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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비극의 불가분성

2026. 9. 25.

사랑을 주제로한 노래와 소설, 영화들은 왜 아릿한 감정을 주로 다룰까? ​

현대 작품 뿐만 아니라 오래된 시, 연극도 다 비극인 경우가 많다. 로맨스라는 단어 또한 과거 중세 기사도에서 비롯된 언어이다. ​왜 낭만이라는 단어에는 아름답지만 망상적이라는 뉘앙스가 내포되어있을까? 내 경험상 강렬한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포유류로써 각종 호르몬이 미친듯이 분비되는 것일 뿐이고, 진짜 사랑이라고 부를 만한 건 오히려 옥시토신 기반의 애착 같은데. ​그렇지만 애착 기반의 사랑이 매체에서 아름답게 다뤄지는 것 역시 슬픈 감정을 섞은게 많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부터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까지>.... ​

아름답다는 건 원래 슬픈 건가?

 



너(2인칭)는 내(1인칭)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닌 것에서 오는 고통

"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네가 아니다"라는 당연한 사실이 모든 사랑 서사의 뿌리에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두 주체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고, 사랑은 그 불가능성을 향한 운동일 수 있다. 조르주 바타유는 에로티시즘을 "분리된 존재의 불연속성을, 죽음을 무릅쓰고 연속성으로 회복하려는 시도"라고 했다. 그래서 에로스가 타나토스와 그토록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다. 사랑이 강렬할수록 자아가 녹아내리고, 그 녹아내림은 작은 죽음이니까.

낭만이라는 단어의 망상적 뉘앙스는 어원에 처음부터 박혀 있다. Romance는 중세 라틴어가 아닌 로망어(romanz)로 쓰인 이야기를 뜻했는데, 그 이야기들이 바로 기사도 로망스, 즉 궁정연애였다. 그런데 궁정연애의 핵심 구조가 뭐냐면, 닿을 수 없는 귀부인을 향한 사랑이다. 기사들이 구애하는 상대는 대개 이미 결혼한 여인이거나 신분이 높아 가질 수 없는 존재였고, 그 도달 불가능성이 사랑을 정제한다는 것이 미학이었다. 

즉 로맨스는 시작부터 충족되지 않음을 본질로 하는 양식이었다. 



호르몬과 애착에 대한 신경과학적 구분

도파민-노르에피네프린 기반의 격정과 옥시토신-바소프레신 기반의 애착은 다른 회로다. 로맨스를 표방하는 서사들은 대부분 전자를 다룬드. 매체가 전자를 편애하는 이유는 아마도, 후자가 서사적 긴장이 낮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도 이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다. 안정된 애착이 자리잡은 모양은 대부분 비슷하모 지루하다는 것이다. 

내가 진짜 묻고 싶은 건 그 다음이다. 왜 애착 기반의 사랑이 다뤄질 때조차 슬픔이 섞이는가. 〈인생은 아름다워〉,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더 나아가 〈Up〉의 첫 10분 같은 것들.

격정의 비극성이 닿을 수 없음에서 온다면, 애착의 비극성은 잃을 수밖에 없음에서 온다. 격정은 공간적 결여이고 애착은 시간적 결여다. 옥시토신은 함께 있는 시간 속에서만 쌓이는는데, 시간 속의 모든 것은 풀려나간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취약성에 자신을 여는 일이고, 깊은 애착일수록 잃을 것이 커진다. 그래서 〈인생은 아름다워〉가 강력한 이유는 죽음 때문이 아니라 죽음에도 불구하고 지키려 한 일상의 농담들 때문이다. 유한성이 그 일상을 빛나게 하는 거고.



아름다움은 원래 슬픈 것인가

여기서 나의 질문, 아름다움은 원래 슬픈 것인가에 닿게 된다. 나는 아름다움이 슬픈 것이라기보다는, 아름다움과 유한성이 같은 동전의 양면인 것 같다. 우리는 잃을 수 있는 것만 사랑할 수 있고, 사라질 수 있는 것만 아름답다고 느끼는 존재로 만들어져 있다. 영원한 것은 숭고할 수는 있어도 애틋할 수는 없다. 

벚꽃이 아름다운 건 곧 진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유한성은 가치를 깎아내리는 게 아니라, 가치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다.

그러니까 사랑 노래가 아릿한 건 사랑이 슬퍼서가 아니라, 사랑이 시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 밖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다른 무엇, 신학자들이 신의 사랑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우리 같은 유한한 짐승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끝을 품고 시작하는 것이고, 예술은 그 사실을 가장 정직하게 비추는 거울이다. 그래서 예술 속에서 사랑과 비극은 불가분하게 그려지는 게 아닐까 싶다.